안경의 변천사 사진
안경의 변천사 사진

저는 시력이 아주 나빠 초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착용해 왔습니다. 게다가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시력이 다른 짝눈이어서 새 안경을 맞춘 뒤 바닥을 바라보면 땅이 기울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안경을 쓰지 못한다면 운전할 때 표지판이나 주변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고, 길을 걸으며 찾으려는 음식점 간판도 지나칠 수 있습니다. 너무 익숙한 물건이라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지만, 안경이 사라진 하루를 떠올리면 생활의 범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두 장의 렌즈를 얼굴에 걸치는 안경은 언제 생겼을까요. 초기 안경은 지금처럼 하루 종일 쓰는 물건이 아니었으며, 렌즈와 테가 바뀌고 새로운 착용 예법까지 만들어지는 긴 과정을 거쳐 일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안경의 시작은 책 위의 확대 도구였다

안경이 발명되기 전에도 글자를 크게 보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둥글게 다듬은 수정이나 유리를 책 위에 올려놓으면 글자가 확대되어 보였는데, 이러한 도구는 흔히 '리딩 스톤' 또는 독서석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독서석은 손이나 책상 위에 놓고 쓰는 확대경에 가까웠습니다. 두 눈에 맞춘 렌즈를 하나의 틀로 연결한 초기 안경은 대체로 13세기 후반 북부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것으로 인정되며, 특정 인물 한 명을 최초 발명자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오래된 형태에는 가까운 글씨가 흐려진 노안을 돕는 볼록렌즈가 들어갔습니다. 안경의 첫 사용자가 주로 독서 능력을 갖춘 성직자나 학자, 나이 든 독자였던 이유도 초기 안경이 먼 풍경보다 책과 문서를 읽는 일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핵심 요약: 오늘날 안경과 직접 이어지는 초기 형태는 13세기 후반 북부 이탈리아에서 나타났으며, 처음에는 노안으로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손으로 받치던 안경은 어떻게 얼굴에 고정되었을까

13세기의 대표적인 초기 안경은 렌즈 두 개가 든 테의 손잡이 부분을 못처럼 생긴 연결 부품으로 묶은 '리벳 안경'이었습니다. 안경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코를 테 사이에 끼우고 손으로 받쳐야 했으며, 고개를 움직이거나 걸어 다니면서 사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6세기 무렵에는 두 렌즈 사이를 활처럼 휘어진 하나의 코받침으로 연결한 코안경이 널리 쓰였습니다. 가죽과 뿔, 고래수염처럼 탄력이 있는 재료가 활용되기도 했지만, 테가 코를 집는 방식이어서 여전히 독서나 세밀한 작업을 할 때 잠시 꺼내 쓰는 물건에 가까웠습니다.

 

18세기에는 런던의 안경 제작자 에드워드 스칼렛이 관자놀이 쪽을 붙잡는 안경다리 형태를 발전시킨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초기 다리는 귀에 걸리지 않고 머리 옆을 눌렀지만, 이후 귀 뒤로 휘어지는 구조와 경첩이 더해지면서 안경은 손에 드는 독서 도구에서 움직이며 계속 착용할 수 있는 생활 도구로 바뀌었습니다.

핵심 요약: 안경테의 변화는 장식보다 고정 방식의 개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코를 집고 손으로 받치던 구조에 안경다리와 경첩이 더해지면서 장시간 착용이 가능해졌습니다.

볼록렌즈 하나에서 개인별 시력 보정으로

초기 안경의 볼록렌즈는 주로 노안과 원시처럼 가까운 곳을 보기 어려운 눈을 도왔습니다. 이후 근시를 보정하는 오목렌즈가 사용되면서 16세기에는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시력 문제를 서로 다른 렌즈로 보정할 수 있게 되었고, 난시는 방향마다 굴절력이 다른 원주렌즈 계열로 보정하게 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먼 곳을 보는 렌즈와 가까운 글씨를 보는 렌즈를 위아래로 결합한 이중초점 안경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세기에는 시력표와 굴절검사 기술, 도수 단위가 정비되면서 완성된 안경을 눈에 대어 보는 방식에서 개인의 시력을 측정해 렌즈를 맞추는 방식으로 이동했습니다.

 

현대 안경은 좌우 눈에 같은 렌즈를 넣는 물건이 아닙니다. 짝눈인 사람은 두 렌즈가 서로 다른 보정을 맡으며, 도수가 크게 달라진 새 안경에서는 좌우 영상의 크기와 움직임이 다르게 느껴져 바닥이나 사물이 기울어진 듯한 적응 경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안경 렌즈는 노안을 위한 볼록렌즈에서 근시, 난시, 원거리와 근거리를 함께 보정하는 렌즈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양쪽 눈의 도수와 사용 환경까지 반영해 제작됩니다.

조선에 들어온 안경과 벗어야 했던 예법

조선에 안경이 들어온 정확한 해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현재 확인되는 기록은 임진왜란 전후를 가리킵니다. 이호민이 1606년에 쓴 '안경명'에는 작은 글씨가 크게 보이고 흐릿한 것이 밝아지는 물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명나라 인사 심유경과 일본 승려 현소가 안경으로 잔글씨를 읽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 사행이 방문한 베이징 유리창의 안경점과 일본과의 교역 및 외교 예물을 통해 여러 종류의 안경이 들어왔습니다. 경주에서 나는 수정으로 안경을 만들기도 했지만 품질과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 수입품의 비중이 컸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선비뿐 아니라 바느질하는 여성, 정밀 작업을 하는 장인과 의료 활동을 하는 의원에게도 보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자신보다 지위나 나이가 높은 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행동을 불손하게 여겼습니다. 둥근 렌즈에 대모나 소뿔로 만든 테를 쓰고, 금속 다리나 실을 귀에 거는 구조가 사용되었지만 윗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했기 때문에 화려한 자수와 가죽, 나전으로 만든 안경집이 대신 신분과 취향을 드러내는 장신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핵심 요약: 안경은 임진왜란 전후 조선에 알려져 18세기 후반 여러 계층으로 퍼졌습니다. 그러나 연령과 신분을 중시한 예법 때문에 윗사람 앞에서는 벗어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안경은 눈앞의 일상을 다시 연결한 도구다

안경 착용이 보편적인 모습이 된 데에는 렌즈와 테의 개선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인쇄물과 학교 교육의 확대, 정밀한 산업 작업의 증가, 시력검사 체계와 대량생산의 발전이 함께 이어지면서 안경은 노년의 독서 도구에서 어린이와 성인이 매일 사용하는 물건으로 변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써 온 사람에게 안경은 외출 전에 챙기는 액세서리보다 몸의 일부에 가깝습니다. 운전할 때 주변을 확인하고, 길을 걸으며 간판을 찾고, 사람의 표정과 사물의 윤곽을 구분하는 평범한 행동이 안경 한 벌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경은 눈의 굴절 상태를 없애는 물건이 아니라 착용하는 동안 빛의 방향을 조절해 초점이 맞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13세기의 독자는 잠시 손에 들고 글자를 읽었지만, 오늘의 착용자는 안경을 쓴 채 배우고 일하고 운전하며 이동한다는 점에서 안경의 역사는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넓어진 과정이기도 합니다.

핵심 요약: 안경은 잠깐 사용하는 확대 도구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개인 맞춤형 시력 보정 도구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는 독서와 노동, 이동과 안전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안경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특정 인물을 최초 발명자로 확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합니다. 현재는 두 개의 렌즈를 연결한 초기 안경이 13세기 후반 북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조선에는 안경이 언제 들어왔나요?

임진왜란 전후에 알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확인되는 이른 기록으로는 1606년 이호민의 '안경명'과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수록된 안경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왜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벗었나요?

연장자와 높은 지위의 사람을 공경하는 예법 때문이었습니다. 안경을 쓴 채 상대를 바라보는 행동이 자신을 과시하거나 윗사람을 가볍게 대하는 태도로 해석될 수 있어 왕이나 어른 앞에서는 벗는 풍속이 자리 잡았습니다.

참고자료

영국 검안사협회 박물관 - The history of spectacles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 Spectacle Correction of Ametropias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지식인의 상징, 안경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HK플러스사업단 - 안경,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화가 되다 II

영국 과학박물관 그룹 - Bi-focal spectacles after Benjamin Franklin's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