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사진
시계 사진

 

휴대전화 화면만 켜도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손목에 시계를 찹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 겹치는데도 손목시계는 옷차림의 일부이자 한 시기를 기억하게 하는 물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사회 초년생 시절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뜻으로 정품 손목시계를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손목시계를 모으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던 마음도 있었고, 당시에는 부담스러웠던 30만원을 지불했는데 나중에 쿠팡에서 같은 시계가 10만원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배가 아팠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작은 원형 시계 하나에는 자연을 관찰하던 시간 측정법, 움직이지 못하던 기계의 소형화, 전쟁과 철도의 필요, 대량생산과 전자기술의 변화가 겹쳐 있습니다. 시계가 어떻게 건물과 주머니를 거쳐 손목 위에 자리 잡았는지 따라가면 이 물건이 선물과 취미의 대상이 된 이유도 함께 드러납니다.

시간은 처음부터 작은 기계로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시간 측정은 하늘과 계절의 변화를 읽는 일이었습니다. 낮에는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의 위치를 살피고, 밤에는 별의 움직임을 관찰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하루를 낮의 열두 시간과 밤의 열두 시간으로 나누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해시계는 태양이 보이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물이 일정하게 흐르는 성질을 이용한 물시계가 함께 발전했습니다. 모래시계와 촛불시계도 특정 물질이 흘러내리거나 타들어 가는 양으로 시간의 길이를 재는 도구였으며, 현재 시각보다 일정한 작업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확인하는 데 알맞았습니다.

 

오늘날의 시계와 가까운 기계식 시계는 14세기 유럽에서 나타났습니다. 초기 기계식 시계는 무거운 추의 낙하를 동력으로 삼았고 정밀도도 높지 않았지만, 날씨와 햇빛에 의존하지 않고 톱니바퀴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계속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도구와 달랐습니다.

핵심 요약: 시계의 출발점은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었으며, 기계식 시계는 날씨와 관계없이 일정한 움직임을 반복하게 만든 장치였습니다.

무게추를 떼어내자 시간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무게추로 움직이는 시계는 추가 내려갈 공간과 단단한 설치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교회나 관공서의 높은 시계탑에는 어울렸지만, 이동하는 사람이 들고 다니기에는 구조가 크고 충격에도 민감했습니다.

 

16세기에 태엽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시계가 발전하면서 크기를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감아 놓은 태엽이 서서히 풀리는 힘으로 톱니바퀴를 움직였기 때문에 벽에 고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작은 탁상시계와 몸에 지닐 수 있는 시계가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휴대용 시계는 정확한 생활 도구라기보다 값비싼 금속 세공품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후 옷에 주머니가 보편화되고 시계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덮개와 분실을 막는 체인이 더해지면서 회중시계가 대표적인 개인용 시계가 되었고, 시간을 소유한다는 의미도 권력과 신분에서 직업적 책임으로 넓어졌습니다.

핵심 요약: 휴대용 시계의 핵심 변화는 무게추를 태엽으로 바꾼 일이었습니다. 이 변화가 시계를 건축물에서 떼어내 주머니 속으로 옮겼습니다.

손목시계는 장식품과 작업 도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최초의 손목시계'가 무엇인지는 기준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작은 시계를 팔찌에 결합한 장식품은 비교적 일찍 제작되었지만, 손목에 고정한 시계를 움직이면서 사용하는 근대적 형태는 1880년대 유럽과 미국의 여성들이 야외 운동을 할 때 착용한 가죽 밴드 시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당시 많은 남성은 손목시계를 여성용 장신구로 여겨 회중시계를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전장에서 지도와 장비를 다루면서 시간을 확인하려면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고 덮개를 여는 동작이 불편했기 때문에 군인들은 회중시계를 가죽끈이나 천으로 팔과 손목에 고정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손목시계는 여러 병과의 군인과 간호사에게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두 손을 자유롭게 둔 채 한 번의 동작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성별에 관한 인식을 밀어냈고, 읽기 쉬운 숫자판과 튼튼한 유리, 손목에 안정적으로 고정되는 밴드가 실용적인 설계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핵심 요약: 전쟁이 손목시계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지만, 남성용 생활 도구로 인식되게 한 결정적인 확산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장과 표준시가 시계를 일상의 필수품으로 만들었습니다

19세기 철도는 여러 지역을 빠르게 연결했지만 도시마다 태양을 기준으로 정한 시간이 달라 운행표를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기관사와 차장이 같은 시각을 공유하지 않으면 단선 구간에서 사고가 날 수 있었으므로 철도회사는 정확한 회중시계를 지급하거나 검사하고 역의 표준 시계에 맞추도록 관리했습니다.

 

공장제 생산과 교환 가능한 부품은 숙련 장인이 한 개씩 만들던 시계의 가격을 낮추고 생산량을 늘렸습니다. 철도 운행, 공장 교대, 학교 수업과 사무실 출근처럼 약속된 시각에 맞춰 움직이는 생활이 확대되면서 개인 시계는 부유층의 장식품에서 직장인과 노동자의 복장에 포함되는 도구로 변했습니다.

 

1969년 세이코가 상용화한 쿼츠 아스트론은 세계 최초의 시판 석영 손목시계로 기록됩니다. 전기로 일정하게 진동하는 석영 결정을 시간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은 기계식 구조보다 높은 정확도와 편리한 관리를 제공했고, 이후 대량생산이 이어지면서 정확한 손목시계는 훨씬 넓은 소비층이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핵심 요약: 손목시계의 대중화는 한 가지 발명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표준화된 생활 시간, 공장 생산, 전쟁과 석영 기술이 차례로 보급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한국에서 시계는 공공의 시간에서 개인의 기억으로 옮겨갔습니다

조선에서는 1434년에 제작된 앙부일구가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공중용 해시계로 설치되었고, 같은 해 만들어진 자격루는 물의 흐름과 자동 시보 장치를 결합해 국가의 표준 시계로 사용되었습니다. 개인이 시계를 하나씩 소유하기 전에는 정해진 장소의 시계와 종소리가 공동체의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근대 이후 서양식 시계가 들어오면서 회중시계와 벽시계가 사용되었고, 1920년대 이후 신문 광고에는 회중시계와 함께 손목시계가 등장했습니다. 손목시계의 비중이 점차 커지면서 시계는 학교 입학과 졸업, 취업과 승진 같은 새로운 생활 단계에 맞춰 장만하거나 선물하는 물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 제가 30만원짜리 손목시계를 산 것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10만원에 판매되는 모습을 보고 속이 쓰렸지만, 그 시계에는 처음으로 큰돈을 들여 스스로의 수고를 인정했던 순간과 친구의 취미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함께 남았습니다.

핵심 요약: 손목시계는 시간을 읽는 도구인 동시에 인생의 한 시기와 선택을 보관하는 물건입니다. 휴대전화가 시각 표시 기능을 대신해도 이 기억까지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최초의 손목시계는 누가 만들었나요?

장식용 팔찌 시계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손목시계 가운데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기록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한 사람을 최초 발명자로 단정하기보다 19세기 후반 가죽 밴드 시계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근대적인 손목시계가 자리 잡았다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손목시계는 전쟁 때문에 생긴 물건인가요?

손목에 차는 시계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여성용 스포츠 시계와 장식용 시계로 사용되었습니다. 전쟁은 이미 존재하던 형태의 실용성을 확인하고 남성 군인과 일반 소비자에게 빠르게 퍼뜨린 계기였습니다.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는 무엇이 다른가요?

기계식 시계는 감긴 태엽이 풀리는 힘과 기계 부품의 왕복 운동으로 시간을 나누며, 쿼츠 시계는 배터리와 석영 결정의 일정한 진동을 이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쿼츠 방식이 정확하고 관리가 간편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움직이는 부품의 구조와 제작 기술을 감상하는 물건으로도 선택됩니다.

참고자료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 Second: The Past

스미스소니언 미국역사박물관 - Mechanizing Time

스미스소니언 미국역사박물관 - Synchronizing Time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시계

국가유산청 - 조선이 남긴 시간의 유산 천문시계

세이코 워치 - The Astron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