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보급 받는 모습

해병대 통신병으로 복무할 때 훈련을 나가면 먹었던 전투식량이 생각납니다. 포장을 살짝 뜯어 초콜릿과 빵을 먼저 꺼낸 뒤 안에 든 팩을 작동시키면 김이 솟아올랐습니다. 한동안 기다렸다가 따뜻해진 음식을 꺼내 먹었는데, 저는 그 안에 들어 있던 퍽퍽한 빵이 꽤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맛없다고 하던 초콜릿도 이상하게 제 입에는 잘 맞았습니다.

 

초콜릿은 바로 먹지 않고 아껴 두었다가 행군하면서 몰래 뜯어 먹곤 했습니다. 작은 초콜릿 한 조각이 평소보다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전투식량 속 빵과 초콜릿처럼 지금은 일상적인 음식 가운데에는 군대의 보급 문제와 깊이 연결된 것들이 있습니다. 통조림과 인스턴트커피, 군용 초콜릿은 먼 거리로 많은 음식을 보내야 했던 전쟁을 거치며 형태와 생산 방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다만, 전쟁이 모든 음식을 처음 발명했다고 말하면 사실과 어긋납니다. 어떤 음식은 군대의 요구로 개발되었지만, 어떤 음식은 이미 존재하다가 전쟁을 통해 대량생산되고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전쟁이 음식을 만들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전쟁과 음식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발명, 개량, 확산을 구분해야 합니다. 군대의 필요 때문에 처음 개발된 식품이 있는 반면, 민간에서 먹던 음식이 전투식량에 채택된 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뀐 사례도 있습니다. 군용 식품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가정 음식과 다릅니다. 오랫동안 상하지 않아야 하고, 충격과 온도 변화에 견뎌야 하며, 병사가 직접 들고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워야 합니다.

 

조리시설이 없는 곳에서도 먹을 수 있어야 하므로 캔과 건조식품, 밀봉 파우치가 발달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기 때문에 설탕과 지방이 든 초콜릿이나 간편한 빵도 전투식량의 반복적인 구성품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공장에 엄청난 물량과 일정한 규격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량생산 설비와 포장 기술, 장거리 운송망이 확충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 시설과 기술이 민간 식품시장으로 옮겨갔습니다.

 

따라서, 전쟁터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 표현은 음식을 누가 처음 먹었는가보다 어떤 필요가 현재의 형태를 만들었는가에 가깝습니다. 전쟁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환경이 아니라 부족한 시간과 공간, 재료를 견디기 위한 식품을 요구한 환경이었습니다.

핵심 요약: 전쟁은 모든 음식을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라 보존성, 휴대성, 대량생산이라는 기준에 맞게 기존 음식을 개량하고 널리 퍼뜨렸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촉발한 통조림의 탄생

18세기 말 프랑스군은 넓어진 전선으로 많은 병력과 식량을 이동시켜야 했습니다.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음식은 오래 보관할 수 있었지만 종류가 제한되었고, 긴 이동 중에 상하거나 영양 상태가 나빠지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1795년 육지와 바다의 군대에 대량의 식품을 공급할 수 있는 보존법을 찾기 위해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제과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는 음식을 용기에 넣어 가열한 뒤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하는 방법을 오랜 실험 끝에 완성했습니다.

 

아페르는 1809년 상금을 받았으며, 그의 방법은 근대적인 병조림과 통조림 기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사용한 용기는 오늘날 떠올리는 금속 캔이 아니라 주로 유리병이었습니다. 이후 영국에서 금속 용기를 이용한 방식이 등장하면서 병보다 튼튼하고 운반하기 쉬운 통조림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캔은 두껍고 무거웠으며 여는 데도 도구가 필요했지만, 제조기술이 개선되면서 군함과 원정대뿐 아니라 도시의 식료품점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통조림은 계절과 생산지를 벗어나 음식을 유통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과일과 채소, 고기와 생선을 먼 지역으로 보내는 식품산업이 성장했고, 비상식량과 재난 구호식품을 비축하는 방식도 이 기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핵심 요약: 근대 통조림의 출발점에는 프랑스군의 식량 보급 문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리병에 가열해 밀봉하는 방식이었으며 금속 캔은 이후에 도입되었습니다.

세계대전이 키운 인스턴트커피와 군용 초콜릿

인스턴트커피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처음 발명된 음식은 아닙니다. 물에 녹는 커피 제품은 전쟁 전에 이미 개발되고 있었지만, 전선에서 빠르게 따뜻한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군대의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미국 국립 제1차 세계대전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미 육군은 1918년 새롭게 성장하던 수용성 커피 산업을 사실상 군수 생산에 동원했습니다. 병사들이 주머니에 넣어 운반할 수 있는 작은 커피 용기가 보급되었고 하루 생산량은 최대 6,000파운드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귀환한 병사들은 짧은 시간에 커피를 타 마시는 습관을 민간 생활로 가져왔습니다. 전쟁이 인스턴트커피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낯선 가공식품을 많은 사람이 반복해서 경험하게 만든 것입니다. 초콜릿도 전쟁 이전부터 판매되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전쟁부는 식품업체와 협력해 고온에서도 쉽게 녹지 않고 작은 크기로 많은 열량을 제공하는 군용 초콜릿을 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Ration D' 초콜릿은 한 덩어리에 600칼로리를 제공하는 생존식이었으며 맛보다 보존성과 에너지 공급을 우선했습니다. 너무 맛있으면 비상시까지 남겨 두지 않고 먼저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과자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콜릿은 열량만 채우는 물품이 아니었습니다. 고된 환경에서 익숙한 단맛을 제공하고 다른 물품과 교환할 수 있는 작은 기호품이었으며, 전후에는 군수 생산을 통해 늘어난 생산 능력이 대중적인 초콜릿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핵심 요약: 인스턴트커피와 초콜릿은 전쟁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용 규격과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더 많은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팸이 바다를 건너 부대찌개로 이어진 과정

스팸 역시 전쟁터에서 처음 만들어진 제품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스팸은 1937년 미국에서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보관하기 편한 민간용 고기 통조림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냉장시설 없이 운반할 수 있는 육류라는 점이 군수품에 적합했습니다. 제조사 자료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스팸 제품은 1억 3,300만 캔에 해당하는 물량이 군인과 해외 민간인에게 공급되었습니다.

 

미군과 군수물자가 이동한 지역에서는 스팸과 햄, 소시지가 현지의 밥과 면, 채소 요리에 결합했습니다. 같은 통조림이라도 하와이와 일본, 필리핀과 한국에서 서로 다른 조리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현지 사람들이 익숙한 맛과 식사 방식에 맞추어 재료를 다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6·25전쟁 이후 미군 부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던 햄과 소시지가 새로운 음식 재료가 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60년대 의정부 지역에서 이 재료들을 김치와 두부, 콩나물 등과 함께 끓인 부대찌개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합니다.

 

부대찌개는 미군 전투식량을 그대로 데워 먹은 음식이 아닙니다. 전쟁 이후의 부족한 생활 속에서 외국의 가공육을 한국식 찌개 조리법과 매운 양념에 결합해 새롭게 만든 음식입니다. 이 사례는 전쟁 식품이 군대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군부대 주변의 시장과 식당, 가정에서 재료의 용도가 달라지면서 군수품이 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문화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핵심 요약: 스팸은 전쟁 전에 출시되었지만 세계대전을 통해 국제적으로 퍼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후의 가공육이 김치와 찌개 조리법을 만나 부대찌개라는 새로운 음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전투식량 한 봉지에 남은 오래된 설계 원칙

초기의 군용 식량은 소금에 절인 고기와 단단한 빵처럼 오래 버티는 음식을 한꺼번에 나누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캔에 담긴 개인 전투식량이 등장했고, 가공기술이 발전하면서 무거운 금속 캔은 가벼운 다층 파우치로 바뀌었습니다. 미군의 MRE는 1980년 본격 생산에 들어가 1983년부터 야전에 보급되었습니다. 걸프전 이후 장병의 평가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메뉴가 늘어났고, 1990년대에는 물을 이용해 불꽃 없이 음식을 데우는 발열팩이 기본 구성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런 발열식 전투식량의 핵심은 맛있는 한 끼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별도의 취사도구가 없어도 작동해야 하고, 불빛이나 연기를 크게 만들지 않으면서 이동 중인 병사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제가 훈련 중 전투식량의 팩을 작동시킨 뒤 김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던 과정에도 이런 원칙이 담겨 있었습니다. 밖으로 빼 두었던 빵과 초콜릿은 조리하지 않고 곧바로 먹을 수 있는 휴대식이었고, 따뜻하게 데운 주식은 지친 상태에서 한 끼를 먹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맛없다고 하던 초콜릿을 아껴 두었다가 행군 중 몰래 먹었던 기억은 군용 초콜릿의 또 다른 기능을 떠올리게 합니다. 숫자로 계산되는 열량 외에도 작은 단맛과 익숙한 음식이 주는 만족감은 전투식량을 실제로 먹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통조림과 인스턴트커피, 초콜릿과 스팸의 역사는 전쟁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극심한 부족과 이동의 필요 속에서 만들어진 식품기술이 전쟁 이후 편의식과 비상식량, 지역 음식으로 남게 된 과정을 보여 주는 생활사의 한 장면입니다.

핵심 요약: 현대 전투식량은 가벼운 포장, 긴 보존기간, 빠른 가열과 즉시 섭취라는 오랜 군수 원칙의 결과입니다. 그 안의 작은 빵과 초콜릿에는 영양뿐 아니라 실제로 먹고 싶게 만드는 심리적 기능도 담겨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통조림은 정말 나폴레옹이 발명했나요?

나폴레옹이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정부가 군대에 공급할 식품 보존법을 공모했고, 니콜라 아페르가 가열한 음식을 밀봉하는 방법을 개발해 1809년 상금을 받았습니다.

인스턴트커피와 초콜릿도 전쟁 중에 처음 생겼나요?

두 음식 모두 전쟁 이전에 존재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스턴트커피의 생산과 소비를 확대했고, 제2차 세계대전은 초콜릿을 고열량·내열성 군용 식품으로 개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군용 초콜릿은 왜 일반 초콜릿보다 단단하고 맛이 덜한가요?

과거의 대표적인 군용 초콜릿은 고온에서 녹지 않고 장기간 보관되며 비상시에 많은 열량을 공급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맛보다 생존식의 기능을 우선했기 때문에 일반 과자와 식감과 단맛이 달랐습니다.

참고자료

미국 국립농업도서관 - How Did We Can?

미국 국립 제1차 세계대전 박물관 - Coffee and WWI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 - Chocolate Bars in the Second World War

Hormel Foods - History with U.S. Military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부대찌개

미 육군 - Operational ations of the Department of Def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