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사진
삼계탕 사진

 

최근 외할머니 생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갈 때마다 커다란 갈비와 삼계탕, 꽃게를 넉넉하게 차려주시는데, 이번에는 삼계탕을 메인으로 준비해 가족 한 사람마다 닭 한 마리씩 담아주셨습니다.

 

음식도 맛있지만 손이 워낙 크셔서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배가 터질 만큼 먹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고, 뜨거운 국물과 부드러운 닭고기를 먹다가 문득 복날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복날 음식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삼계탕을 떠올리지만, 이 조합이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복달임이라는 오래된 풍습 위에 닭 사육, 인삼 유통, 외식 문화의 변화가 겹치면서 오늘날의 삼계탕이 대표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복날 음식보다 먼저 있었던 복달임 풍습

삼복은 초복, 중복, 말복을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초복은 하지 뒤 세 번째 경일,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 뒤 첫 번째 경일에 해당해 해마다 날짜가 달라집니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 더위를 견디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계곡과 물가에서 더위를 식혔는데, 이러한 여름나기를 복달임 또는 복놀이라고 불렀습니다. 복달임은 특정 요리 하나를 뜻하기보다 지친 몸을 돌보고 더운 시기를 무사히 넘기려는 여러 생활 풍습을 아우르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인 삼복 음식에는 개장국을 비롯해 팥죽, 수박, 참외와 지역별 고기 요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옛날 복날의 주인공이 언제나 삼계탕이었다고 생각하면 실제 변화 과정을 놓치게 됩니다.

핵심 요약: 복달임은 한 가지 음식을 먹는 행사가 아니라 더위를 견디기 위한 음식과 휴식, 물놀이 풍습을 함께 가리켰습니다.

삼계탕의 뿌리는 닭백숙과 인삼의 결합

현재 확인되는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삼계탕'이라는 음식명을 찾기 어렵습니다. 당시에도 닭을 푹 삶은 백숙과 닭국은 있었지만, 어린 닭의 배에 찹쌀과 수삼을 넣어 한 사람 앞에 한 마리씩 내는 형태가 널리 정착한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인삼은 보관과 유통이 쉽지 않은 재료였습니다. 캐낸 수삼은 오래 두기 어려웠기 때문에 과거에는 말린 백삼이나 인삼 가루가 주로 이용됐고, 닭과 인삼을 함께 끓이는 음식도 일부 여유 있는 가정이나 특정 계층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1921년판 조선요리제법에는 손질한 닭의 배 속에 찹쌀과 인삼 가루를 넣어 끓이는 조리법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의 삼계탕과 재료 배치는 비슷하지만 생수삼 한 뿌리를 넣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현대 삼계탕으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삼계탕은 오래된 닭백숙 문화에 찹쌀과 인삼을 더하는 조리법이 결합하면서 점차 현재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계삼탕은 언제 삼계탕이 되었을까

삼계탕의 옛 이름으로 자주 언급되는 말이 '계삼탕'입니다. 닭을 뜻하는 계가 앞에 있고 인삼을 뜻하는 삼이 뒤에 있으므로,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라는 음식의 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1930~1940년대 자료를 보면 여름철 닭 요리에 인삼을 넣어 보양식으로 먹던 흔적은 확인되지만, '계삼탕'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사용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닭백숙, 연계백숙, 닭국처럼 기존 명칭이 함께 쓰였고 조리법도 가정과 음식점에 따라 달랐습니다.

 

1960년대 서울 음식점 광고에는 '삼계탕'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인삼이 닭보다 귀하게 여겨져 이름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기보다 수삼의 상품성과 보양식 이미지를 앞세운 음식점 이름이 확산된 결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핵심 요약: '계삼탕'은 닭 중심의 이름이었고, 1960년대부터 인삼의 가치와 상품성을 앞세운 '삼계탕'이라는 명칭이 널리 퍼졌습니다.

1960~1970년대에 복날 대표 음식으로 정착한 이유

삼계탕이 대중 음식이 되려면 어린 닭과 수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1920년대 이후 개량 닭과 양계 기술이 보급되고, 1960년대에는 정부의 양계업 지원과 생산 확대가 이어지면서 식용 닭을 이전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냉장 보관과 운송 시설의 발달도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짧은 기간 안에 소비해야 했던 수삼을 산지 밖으로 운반할 수 있게 되면서 인삼 가루가 아니라 수삼 한 뿌리를 닭 속이나 국물에 넣는 오늘날의 모습이 가능해졌습니다.

 

1950년대 이후 삼계탕을 파는 음식점이 등장하고, 196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전문점이 늘어난 뒤, 1970년대 중반에는 대표적인 여름 외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전 복달임의 중심이었던 음식들이 생활환경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줄어드는 동안, 재료 구성이 익숙하고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핵심 요약: 양계업 성장과 냉장 유통, 외식업 발달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삼계탕은 1960~1970년대에 복날 대표 음식으로 정착했습니다.

한 사람 앞에 닭 한 마리, 달라진 여름 보양식

예전 닭백숙은 큰 닭을 삶아 가족이나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삼계탕은 비교적 작은 닭의 배에 찹쌀과 인삼, 대추, 마늘 등을 넣고 한 사람분으로 내기 좋아 도시 음식점의 개인 상차림과 잘 맞았습니다.

 

이후 삼계탕은 복날 식당에서만 먹는 음식에서 벗어나 통조림, 냉동식품, 레토르트 제품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계절에 관계없이 어린 닭을 생산하고 재료를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여름 절식이었던 음식이 사계절 보양식이자 한국을 알리는 음식으로 범위를 넓혔습니다.

 

외할머니께서 가족마다 삼계탕 한 마리씩 담아주신 모습도 이러한 변화와 이어져 있습니다. 한 그릇에 닭과 곡물, 국물을 함께 담는 음식의 구조에는 근현대 식생활의 변화가 들어 있고, 넉넉하게 먹여 보내려는 가족의 마음에는 오래된 복달임의 의미가 남아 있습니다.

핵심 요약: 오늘날의 삼계탕은 개인용 한 그릇 음식으로 표준화됐지만, 더운 시기에 가족과 음식을 나누며 기운을 북돋우던 복달임의 마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삼계탕은 조선시대부터 먹던 복날 음식인가요?

조선시대에도 닭백숙과 닭국은 있었지만, '삼계탕'이라는 이름과 현재의 조리 형태가 널리 정착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인삼을 넣은 닭 요리의 기록은 확인되지만 오늘날의 삼계탕과 완전히 같은 음식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계삼탕과 삼계탕은 서로 다른 음식인가요?

두 명칭은 닭에 인삼과 찹쌀 등을 넣어 끓이는 같은 계통의 음식을 가리킵니다. 닭을 앞세운 '계삼탕'이라는 이름이 먼저 쓰였고, 1960년대부터 '삼계탕'이 음식점과 대중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습니다.

복날에는 원래 삼계탕만 먹었나요?

아닙니다. 복달임 음식에는 개장국, 팥죽, 수박, 참외와 여러 지역 음식이 포함됐습니다. 삼계탕이 복날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는 주로 1960~1970년대 이후입니다.

참고자료

국립민속박물관 - 초복·중복·말복에 알아두면 좋은 삼계탕 문화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계삼탕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삼계탕

국가유산청 - 복날과 삼계탕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 삼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