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유래 사진
세뱃돈 유래 사진

 

어린 시절 세뱃돈을 받는 순간은 늘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머니 손에 맡기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지만, 그마저 어김없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조금 자란 뒤에도 세뱃돈은 아이들에게 아주 커다란 설날 행사처럼 느껴집니다. 외가에서는 극구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20대 중반까지 세뱃돈을 손에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설날 세배와 세뱃돈이 처음부터 한 묶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배와 덕담은 오래된 풍습이지만, 아이가 절을 하고 현금을 받는 모습은 비교적 근대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세뱃돈보다 오래된 것은 세배와 덕담이었습니다

세배는 새해를 맞아 웃어른을 찾아가 절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인사입니다. 여기서 '세'는 한 해를 뜻하고 '배'는 절을 뜻하므로, 세배는 새해에 올리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849년 무렵 편찬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어른들은 젊은 사람에게 과거에 급제하거나 재물을 얻으라는 덕담을 건네며 새해의 앞날을 축원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이 기록의 중심이 돈이 아니라 인사와 덕담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는 세배를 하면 곧바로 봉투가 따라오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전통적인 세배의 핵심은 웃어른과 아랫사람이 새해의 복을 말로 주고받는 데 있었습니다.

핵심 요약: 세배와 덕담은 조선 후기 기록에서도 확인되지만, 당시 기록만으로 오늘날과 같은 어린이 세뱃돈 풍습까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 후기 설날에는 음식과 선물이 오갔습니다

옛 설날에는 세배를 온 사람에게 떡국, 전, 강정, 약과와 같은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이렇게 설 차례와 손님맞이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찬은 먹는 상차림만 뜻하지 않았습니다. 연말에 친척이나 어른에게 쌀, 고기, 어물, 곶감, 옷감 등을 보내 설 준비를 돕고 정을 표시하는 선물도 세찬이라 했습니다. 현금이 널리 쓰이기 전에는 음식과 생활 물품이 새해 선물의 실질적인 기능을 맡았던 셈입니다.

 

이 때문에 세뱃돈의 변화를 돈 하나만 놓고 설명하면 옛 설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배를 받은 집에서는 덕담만 건넨 것이 아니라 음식을 차리고 과일이나 간식을 내주었으며, 형편에 따라 옷이나 물품을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핵심 요약: 현금 세뱃돈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세찬과 설 음식, 과일과 생활 물품이 새해 인사에 대한 대접과 선물의 자리를 채웠습니다.

문안비 기록은 세뱃돈의 직접적인 기원일까요?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하녀를 대신 보내 새해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부녀자를 대신해 친척집과 사돈집을 찾아가 문안하던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고 했습니다.

 

문안비가 찾아오면 상대 집에서는 세배상을 차리고 약간의 돈을 주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이 기록은 새해 인사를 전한 아랫사람에게 음식과 금전을 답례로 건네는 사례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문안비가 받은 돈은 오늘날 친척 아이에게 주는 세뱃돈과 성격이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주인을 대신해 먼 길을 다녀온 심부름에 대한 수고의 뜻도 있었으므로, 문안비 풍습을 어린이 세뱃돈의 확정된 출발점으로 연결하기보다는 관련된 선행 사례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합니다.

핵심 요약: 문안비에게 음식과 돈을 준 사례는 확인되지만, 이것만으로 현재의 어린이 세뱃돈이 문안비에서 직접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925년 해동죽지에 등장한 세배갑

현재 확인되는 한국 문헌 가운데 아이가 세배한 뒤 돈을 받는 풍습을 분명하게 전하는 자료로는 1925년에 간행된 최영년의 해동죽지가 널리 언급됩니다. 이 책은 당시까지 전해지던 명절 풍속과 놀이, 음식과 생활문화를 시와 설명으로 기록했습니다.

 

해동죽지에는 설날 아침 어린아이들이 새 옷과 새 주머니를 갖추고 친척 어른에게 세배하면 어른이 돈을 주었으며, 이를 세배갑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전합니다. 책에서는 이미 이어져 오던 풍속처럼 표현했으므로 실제 시작 시점은 1925년보다 앞섰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 풍습이 정확히 몇 년에 시작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신문에는 아이들이 세뱃돈을 기대하며 여러 집을 다니는 모습을 비판하는 글도 나타나므로, 이 무렵에는 세뱃돈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 요약: 어린이에게 돈을 주는 세뱃돈 풍습은 1925년 해동죽지에서 명확하게 확인되지만, 정확한 최초 시점은 기록 부족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선물은 왜 현금으로 바뀌었을까요?

설날의 답례가 음식과 물품에서 현금으로 바뀐 데에는 생활 방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돈은 보관과 이동이 쉽고 받는 사람이 필요한 곳에 직접 사용할 수 있어, 도시 생활과 화폐 사용이 확대될수록 편리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관련 정부 자료에서는 1960년대 초반까지도 세배 온 아이에게 곶감, 대추와 같은 음식이나 과일을 주는 일이 흔했으며, 경제 성장과 함께 1960년대 후반부터 현금 세뱃돈이 널리 확산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지역과 가정이 같은 시기에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 무렵부터 돈이 설 선물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새해 현금 증여 풍습이 개항 이후 한국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다만 한국에는 이미 세배, 덕담, 세찬과 문안비처럼 새해 인사와 답례를 주고받는 틀이 있었으므로, 외국 풍습이 그대로 옮겨졌다기보다 기존 설 문화와 결합해 한국식 세뱃돈으로 정착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핵심 요약: 세뱃돈은 화폐 사용과 도시 생활이 확대되면서 음식과 물품보다 편리한 새해 선물로 자리 잡았으며, 동아시아 풍습과 한국의 기존 세배 문화가 함께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됩니다.

봉투 속 돈보다 오래 남는 설날의 기억

아이에게 세뱃돈이 큰 행사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평소 직접 소유하기 어려운 돈을 자기 이름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린 뒤 봉투를 모아 금액을 세는 과정 자체가 설날만의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어머니에게 맡긴 세뱃돈이 돌아오지 않거나 호주머니에 넣어둔 돈이 사라졌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가족의 설 풍경으로 남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외가 어른이 손에 쥐여준 세뱃돈은 액수보다 아직 아랫사람으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선물에 가까웠습니다.

 

세뱃돈 유래를 따라가면 돈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세배와 덕담, 음식과 환대였습니다. 봉투의 크기와 전달 방식은 계속 달라지더라도 새해를 무사히 보내라는 축원과 가족 사이의 정을 확인하는 뜻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핵심 요약: 세뱃돈은 비교적 근대에 정착한 현금 선물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세배와 덕담, 새해의 복을 나누는 마음이 겹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세뱃돈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나요?

조선 후기에는 세배와 덕담, 세찬과 문안비에게 돈을 주는 사례가 확인됩니다. 다만 오늘날과 같은 어린이 현금 세뱃돈을 명확히 전하는 기록은 1925년 해동죽지에서 확인됩니다.

세뱃돈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풍습인가요?

중국과 일본의 새해 현금 증여 문화가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세배와 새해 답례 풍습도 이미 존재했으므로 어느 한 나라에서 그대로 들어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세뱃돈을 복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뱃돈은 새해에 건강하고 복되게 지내라는 뜻을 담아 주는 상징적인 돈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의미에서는 액수보다 덕담과 축원의 마음이 더 중심에 놓입니다.

참고자료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설날 풍속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해동죽지 원문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문안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세찬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세뱃돈은 언제부터 주고받았을까?